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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식물

독성과 약용의 경계, 희귀 식물 디기탈리스(foxglove)의 두 얼굴

우리는 자연 속에서 다양한 식물을 접하며 그 식물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대개 전문가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몇 식물은 그 판단조차 모호하다.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치료에 쓰이기도 하며, 잘못 사용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이중적 속성을 가진 식물들이 존재한다.

디기탈리스(Digitalis), 영문명으로 폭스글러브(foxglove)라 불리는 이 식물은 바로 그 경계 위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외형은 화려하고 우아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심장 박동을 조절하고 멈추게 할 수도 있는 강력한 성분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디기탈리스는 단순한 관상용 식물을 넘어서 약용 식물과 유독 식물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희귀한 특성의 식물로 평가받는다.

희귀 식물 디기탈리스의 독성 혹은 약용 성분

이번 글에서는 이 희귀 식물 디기탈리스의 약용 역사, 독성 작용 원리, 그리고 그 식물학적 구조와 생존 전략까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

 

디기탈리스란 어떤 희귀 식물인가

디기탈리스는 현삼과(Plantaginaceae) 또는 예전 분류인 도라지과(Scrophulariaceae)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가장 잘 알려진 종은 디기탈리스 퍼푸레아(Digitalis purpurea)로 보라색에서 분홍색 계열의 종 모양 꽃을 피우며 유럽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에 자생한다.

 

디기탈리스는 자연 상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은 아니지만 특유의 외형적 아름다움 때문에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되며, 건조한 산지, 습지, 숲 가장자리 등 환경에 따라 생존 전략이 달라지는 적응력이 뛰어난 식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디기탈리스를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된 디기톡신과 디기탈린 같은 심장배당체 성분이다.
이 물질들은 심장 근육의 수축력을 증가시키고 맥박을 조절하는 데 사용되며 오늘날에도 심부전, 부정맥 치료에 사용되는 강심제 성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희귀 식물 디기탈리스의 약효

디기탈리스에서 추출한 디기톡신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의사 윌리엄 위더링(William Withering)이 심장질환 환자의 부종과 호흡곤란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며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그 이후 현대 의학에서도 이 성분은 심방세동, 심부전 등 심혈관 질환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디기탈리스 성분은 나트륨-칼륨 펌프(Na⁺/K⁺ ATPase)를 억제함으로써 세포 내 칼슘 농도를 증가시키고, 그 결과 심장 근육의 수축력이 강해진다. 이는 혈액을 더 효율적으로 내보내게 하여 심부전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처럼 디기탈리스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강심 약초로 약용 식물 중에서도 심장에 직접 작용하는 드문 계열에 속한다.

하지만 그 효과가 강력한 만큼 용량 조절을 잘못하면 약이 독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사례가 된다.

 

 

독성 작용과 중독 사례: 약과 독은 한 끗 차이

디기탈리스가 희귀 식물로 분류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약효만큼이나 치명적인 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디기톡신과 디기탈린은 치료량과 치사량의 차이가 매우 좁은 약물(therapeutic window가 좁은 약물)로 알려져 있다.
과다 복용 시에는 다음과 같은 증상이 발생한다.

  • 심박수 감소 또는 불규칙
  • 시야 흐림, 황시증(사물이 노랗게 보임)
  • 구토, 메스꺼움
  • 심한 경우 심정지

실제로 디기탈리스 중독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약초를 자가로 달여먹는 민간요법에서의 사고가 많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의 약’으로도 불리며 치명적인 독초로 취급되기도 했고 현대에도 어린이가 폭스글러브 꽃이나 잎을 실수로 섭취할 경우 위험한 중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디기탈리스는 약용 식물과 독초의 기준선에 서 있는 식물학적 경계선이라 할 수 있다.

 

 

 

희귀 식물 디기탈리스는 왜 독을 가졌을까

디기탈리스가 독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단순히 우연한 화학 성분 축적 때문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식물학적 전략이다.

 

대부분의 초본성 식물은 잎과 줄기, 꽃을 먹는 초식동물이나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2차 대사산물(secondary metabolites)을 만들어 낸다. 디기탈리스에서 생성되는 심장배당체(카디액 글리코사이드)도 그중 하나다.

이 성분은 동물의 심장에 작용하여 먹이를 섭취한 동물이 심장 이상을 일으켜 죽거나 고통을 겪도록 유도한다.
이로 인해 디기탈리스는 자신을 먹은 포식자를 학습시키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독성 방어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이 식물은 약용 가치를 지니기 이전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독성을 진화시킨 것이다.
이는 일부 희귀 식물에서 나타나는 생리학적 진화 방향성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디기탈리스의 약용/독성 성분 요약표

구분 성분 작용 위험성
강심 효과 디기톡신 심근 수축력 증가, 심박 조절 과다 복용 시 심정지
독성 성분 디기탈린 혈중 칼슘 상승, 심장 자극 구토, 시야 이상, 사망 가능
생성 이유 심장배당체 포식자 방어용 2차 대사물질 동물 중독 유도
 

 

 

희귀 식물 디기탈리스가 보여주는 식물의 이중성

디기탈리스는 자생 환경과 분포 면에서는 흔한 식물일 수 있지만 그 생리학적 기능은 매우 이례적이며 독특하다.
한 식물이 동시에 심장병 치료제가 될 수도,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식물의 세계가 단순한 좋은 식물 vs 나쁜 식물이라는 이분법으로는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경계 위의 식물로서의 디기탈리스는 단지 하나의 약초가 아니라 식물이 생존 전략과 인간 사회에서의 쓰임새를 동시에 결정짓는 복합적인 존재임을 상징한다.

 

디기탈리스는 희귀 식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그 이중성과 정밀한 성분 조절의 중요성 때문에 약용 식물 중에서도 연구적, 교육적 가치가 높은 희귀한 사례로서 식물학자들과 약리학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